그때 그시절 고생하는 어릴적 우리네 모습들...
@1960년대의 농촌 아이들....@
1961년 5월 16일의 5.16혁명이후 1960년대말까지도 우리나라의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상... 특히 농촌 생활상은 아직도 식량이 부족한
보릿고개 시절이었고, 농촌의 학교와 어린이들은 아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촌의 주체적인 새마을 운동 전재와
주민들의 적극참여, 그리고 수출 위주의 각종 경제정책과 경제개발은
한국을 발전도상의 국가로 이끌어 갔으며,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었다.
▲ 고무신에 양말도 신지않고 지게로 나무를 지고 있는 모습이 가슴 찡합니다
바람이 불면 힘에 부쳐서 지게와 함께 넘어지고 굴러서 다치기도 하고....
▲ 갯벌에 앉아서 무엇인가 캐고있는 모습입니다.
머리도 다듬지 않았지만, 그 시절에는 머리 다듬어 줄
시간 여유도 없이 바쁘고 힘겹게 살았습니다.
▲ 겨울철 양지쪽에 앉아서 책들을 많이 읽곤했지요.
그 시절 농촌에는 읽을만한 책들도 거의 없었고, 학교 도서관의 책을
빌려다 읽곤 했는데. 도회지에서 얻어온 어린이 잡지라도 있으면
동네방네 돌려 읽고, 교실에 가져오면 인기가 많았습니다.
▲ 학교 다녀오면 당연히 부모님 일을 도왔습니다.
돼지에게 죽을 먹이고 소에게 여물을 끓어 주었습니다. 동생은 아버지 장화 신고 너무 커서 질질 끌고 다녔닙니다. 돼지를 키울정도의 집안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집이기도 했습니다.
▲ 등교길. 흙벽돌의 토담집 초가집에서 그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쉬는 시간. 좋아라 운동장으로 달려나와 뛰놉니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겠지요?
혼자 논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잊고 대화를 잊게 하며,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오게 될 때... 자만심이나 무기력에 빠지기 쉽습니다.
▲ 학교에서 돌아오면 연탄배달 엄마의 일손을 돕습니다.
동생도 덩달아 일손 돕기를 배웁니다. 엄마의 힘겨운 하루...
▲ 연탄 배달을 나와 연탄광에 쌓아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갸륵한 아이들... 요즘엔 찾아보기 힘듭니다.
▲ 전북 순창 학선국민학교 푯말
▲ 책보 - 책가방이 비싸고 드물던 시절
그 시절에는 참고서도 별로 없고, 교과서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책가방 들고 다니는 학생들은 보기 힘들었지요
도시락에 김치국 물이 흘러서 책장이 빨갛게 물들곤 했답니다.
▲ 햑교다녀 오면 부모님 일부터 거들고 주로 밤에 호롱불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숙제를 하였지요. 숙제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고.....
▲ 소 여물 먹이기
집에서 학교 거리가 멀었던 아이들에겐 소여물 먹이기가 중노동에
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4km 정도의 길을 걸어서 등교하고
하교시에는 또 4km를 걸어서 집에 가야했으니까요.
▲ 등교길 징검다리. 장마가 지면 개울이 넘쳐서 학교에 갈 수가 없습니다.
▲ 그 당시 교실 풍경
▲ 교통순경 아저씨 - 중고 외국차를 들여다 다시 만든 자동차였지요.
▲ 시골 읍내와 근처 도회지 모습 - 여고생의 교복 모습이 정겹습니다.
▲ 피로회복제(박카스 또는 구론산)를 팔고 있는 소년
이 시절까지만 해도 사람 통행보다 자동차 통행이 우선이었습니다.
▲ 피로 회복제를 팔러 다니는 소년들
이 시절의 피로 회복제 출현은 세기의 발명품약이기도 했습니다.
▲ 우편물 배달용 차량(쓰리쿼터-바퀴가 3개)
이 시절에는 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자부심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와 딸이 자랑스럽게 찍은 사진 같습니다.
▲ 나무 따게(삽)라고 생각이됩니다. 여학생도 농사일을 도와야 했던 시절입니다.
▲ 연탄을 갈아주어야 방이 따스해집니다.
연탄을 갈아줄 때 지독한 이산화 가스는 건강에도 매우 해롭습니다.
▲ 요즘은 학교 다녀오면 학원이다 머다해서 가사일을 하는 학생들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예전엔 공부 보다도 부모님을 도와 일하는 게 우선이었답니다, 물론 일 때문에 결석도 잦았지요
▲ 어느 부유한 집안 어린이들의 빙상대회
▲ 강원도 속초 모 초등학교에 장애를 가진 친구를 매일 같이
학교에 데려다 주며 돌봐주는 모습(자전거를 개조한 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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