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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린 먼로의 생애...

사랑해 오빠 2021. 11. 28. 02:34

 









@마를린 먼로의 생애.....@





  마릴린 먼로(Marllyn Monroe)만큼 신화의 베일에 싸인 스타가 또 있을까. <7년 만의 외출>에서 지하철의 바람으로 스커트 자락을 휘날리던 매혹적인 지체와 표정은 세계영화사의 명장면이다.
 
  그녀는 할리우드라는 인공의 화원에 핀 더없이 화려한 노란색 장미였지만 36세의 나이에 수면제 과용으로 일찌감치 꺾여버린 병든 장미였다. 그녀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1926년 8월 1일, LA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생아였다. 아버지는 빵가게의 주인으로, 먼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고로 사망,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정신이상자로 병원에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친척이나 양부모 밑에서 자라났는데, 무려 열두 집이나 전전하고 있었다. 철이 좀 들었을 때 그녀는 슬럼가에 살고 있었고, 여덟 살 때 하숙인한테 성폭행을 당한다.
 
  그 후 고아원에 들어가 있기도 했지만 일찍 독립하기 위해 열여섯 살 때 결혼을 한다. 록히드사의 직공 제임스 도하티와는 스무 살 때 이혼한다. 이혼 후 엄습한 생활고는 톰 케리라는 사진작가에게 전라의 누드 사진을 찍고 모델료를 받아야 했을 만큼 절박한 것이었다. 반나이즈 고등학교를 나온 이후 비서와 모델 노릇을 하며 살아가지만 20대 전반기의 그녀는 황폐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콜걸 생활을 했다고도 한다.
 
  가난의 비참함은 그녀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어놓는다. 그녀는 세상을 무서워했다. 세상에 대해 부끄러워했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어 했다. 때로는 우울증에, 때로는 조울증에 시달렸다.
 
  아무튼 ‘몸’을 무기로 삼아 그녀는 영화계로 간다. 단역으로 몇 작품에 출연하다 존 휴스턴 감독의 <아스팔트 정글>에 범죄자의 정부 역을 맡아 출연, 간신히 찬스를 잡는다. 먼로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게 되는 영화는 <나이아가라>다.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정사를 일삼다 목 졸려 살해되는 음란한 여인의 섹스어필은 그녀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성이었다.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특유의 발걸음을 선보인 것도 이 영화에서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할리우드의 톱스타 자리에 오르게 된다. 언론은 ‘백치미’라고 트집을 잡았지만 강한 성적 매력은 그 말과 함께 ‘글래머’라는 또 다른 수식을 붙이게 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돌아오지 않는 강><7년 만의 외출> 등에서 먼로는 섹스어필 외에 희극적인 센스를 곁들여 인간적인 매력도 느끼게 하였다.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큰 키의 야구선수는 믿음직스러웠지만 두 사람은 이상이 달랐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야구선수는 자유분방한 영화배우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뭇 남성의 눈길을 빨아들이며 사는 섹스어필의 대명사 영화배우는 야구밖에 모르는 불세출의 야구선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 번째 결혼 상대자는 극작가 아더 밀러였다. 먼로는 <버스 정류장>(1956), <왕자와 무희>(1957), <뜨거운 것이 좋아>(1959), <사랑합시다>(1960), <황마와 여자>(1961), <아내는 살아 있다>(1962) 등에서 연기력도 보여주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아기가 있었더라면 이혼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난 아이를 갖고 싶었어요. 밀러와의 4년간의 결혼생활에서 두 번이나 유산을 했다는 것은 큰 쇼크였습니다.”
 
  클라크 게이블과 공연한 <황마와 여자> 촬영 직후 게이블이 죽자 그녀는 심한 조울증에 걸리고, 결국 밀러와도 이혼을 한다. 이전부터, 스타의 길을 가면서 그녀는 정신의 안정을 잃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 빠지면 슬기롭게 헤쳐 나오지를 못하고 생활부터 무너지는 스타일이었다. 그 무렵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촬영 중 실종이 되기도 했다.
 
  죽기 얼마 전인 1962년 5월에는 <아내는 살아 있다> 촬영 중이었는데 그녀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촬영장을 빠져나가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 감독은 먼로가 안 나오는 장면을 따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모종의 중압감에 시달리던 먼로는 1962년 8월 4일, LA의 해리너 드라이브 5번지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처음에는 자살을 주장했던 LA경찰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수면제 과용으로 인한 사고사로 고쳐서 발표한다. 죽기 바로 전에 누구와 한참 전화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 먼로의 죽음을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헷갈리게 한다. 케네디 대통령과의 염문설, 그에 따른 CIA 개입설 등이 아직까지도 먼로의 죽음을 수수께끼로 만들고 있다.
 
  슬럼가에서 자라나 한때 콜걸까지 했었다는 세계적인 스타 마릴린 먼로. 육체파 배우로 살아가게 된 것이 행복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스타이기에 사생활이 끝없이 노출된다는 것, 인기를 유지한다는 것,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남자들의 지나친 관심과 눈길……. 이 모든 것이 부담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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