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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가설극장 아시나요...

사랑해 오빠 2022. 1. 24. 23:12

 

@가설극장 아시나요 옛시절 추억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 창문이나 담벼락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면
반가움에 앞서 먼저 가슴부터 울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원술랑, 벽오동 심은 뜻은, 두만강이 잘있거라, 가야의 집, 안시성의 꽃송이, 울어라 열풍아..

눈 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영화 포스터를 바라보며 포스터가 모두 몇 개나 붙어 있는지 (포스터
갯수를 보면 영화를 며칠동안 상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네 집에서 영화를 상영하는지,
전쟁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를 헤아리며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벌써부터 영화 속에
흠뻑 빠져들고 맙니다.


문짝 양 옆에 포스터를 잔뜩 붙인 시커먼 제무시(GMC)가 마을을 누비며 영화 안내를 시작합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서생면민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본 부산 합동영화사에서 오늘밤 여러분들을 모실 영화,
이민자, 최무룡 주연, 피리불던 모녀고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피리불던 모녀고개..
아.. 어찌하여 최무룡과 이민자는 헤어져야만 했던가..
오늘밤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 손수건 지참하시고 손에 손잡고 오세요..
기대하시고 고대하시라,
피리불던 모녀고개.."


라디오조차도 귀하던 그 시절, 일년을 통하여 겨우 몇 번 볼 수 있는 영화야 말로 마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행사였습니다.


마을 한 구석 공터나 밭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천막을 빙 둘러 만든 가설극장 앞에 가보면 주렁주렁
전구가 달려있고 노랗게 빛나는 전깃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별나라에 온 것 마냥 어린 가슴
들은 그저 황홀감으로 가득찻습니다.
타작마당 뒤쪽의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쉴새없이 발동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돈이 있건 말건 가설극장 앞은 언제나 동네 조무래기들이나 마을 어른들로 시끌벅적합니다.
어른들과 함께 들어가거나, 혹은 부모님께 얻은 용돈으로 표를 사서 천막 안으로 들어갈 때면 표를
사지 못해 극장 주변을 지키는 '기도'의 눈치를 흘끔거리면서 서성이는 동네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누구누구가 어떠어떠한 방법으로 돈 안주고 영화를 보았노라는 무용담으로 온
교실이 시끄러웠지요.


극장측에서 손님들을 위해 멍석(덕시기)을 깔아놓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맨 땅 그대로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러 올 때 짚단이나 시멘트 포대를 가지고 와서 앞 쪽부터 자리
를 잡고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냥 뒤에 서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상영 시간이 지나도 영화는 좀처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관객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엉덩이에 쥐가 나고 슬슬 조급증이 생길 무렵이면 기다리던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 옵니다.

"지루한 시간 오랬동안 기다렸습니다.
지루한 시간 오랬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뚜~~"하는 벨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집니다.
지금까지 소란스럽기만 하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는것도 이때였습니다.


촤르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먼저 '대한늬우스'부터 시작합니다.
대한늬우스를 통하여 우리는 서울을 비롯한 바깥 세상의 풍경도 보고 대통령과 영부인도 봅니다.
창경원의 원숭이도 구경하고 영화배우 김희갑, 김지미가 일일 교통안내를 하는 모습도 봅니다.
대한늬우스의 마지막은 언제나 '월남소식'으로, 머나먼 이국땅 월남에서 우리 국군용사 아저씨
들이 베트콩과 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리도 놓고 도로를 건설하는 활약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기다리던 '본영화'가 시작됩니다.
화면은 지직거리며 비오듯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스크린은 춤을 춥니다.
갑자기 화면이 하얗게 변하면서 필름이 끊어지면 여기저기서 "에이~"하는 소리와 함께 '휘익 휘익'
휘파람 소리도 들려오지만 이내 조용해집니다.
영화 한 편 볼때마다 서너번씩은 늘 그랬기에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겠지요.
영사기 기사의 재빠른 필름 붙이는 솜씨에 영화는 이내 돌아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쪽 모퉁이에서 돌아가던 발동기마저 멈춰 서 버립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시간짜리 영화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주인공이 포악한 악당의 흉계에 빠져 갖은 고생을 다 할 때면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흐느끼는 소리
가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남자들은 울음을 참느라 헛기침을 하고..
마지막에 가서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찿아낸 적의 가슴을 향해 통쾌한 복수의 칼날을 꽂을때면
모두들 너나 할 것 없이 요란하게 손뼉을 치며 마치 자신의 일인양 기뻐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기 일 이십 분 전이면 둘러쳐진 극장의 천막이 걷혀 올려집니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천막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그림자와 소리만으로 영화를 보고있던
많은 조무래기들이 우루루 안으로 몰려 들어갈 때가 바로 이때였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행운권추첨'이란 행사가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로 수건이나 냄비, 다라이, 밥그릇 등이 경품으로 주어졌는데 언젠가 일등 상품으로 재봉틀이
주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어제 본 영화 이야기로 교실 안은 온통 시끄럽습니다.
영화를 본 친구는 어젯밤 영화를 보지못한 친구들을 모아놓고 침을 튀기며 요란하게 설명합니다.
주인공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줄거리를 줄줄 외웁니다.
"신영규이가 아인나 허장가이가 배반해가지고 일본놈한테 잡혔다가 탈출할 때 야~ 그때 실감나데.
영화 자알 됐더라.." 하면서 "짜잔~" 소리와 함께 특수효과까지 동원합니다.
영화 본 것보다 다음날 친구의 이야기 듣는게 더 재미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시청각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반공영화나 사극영화였는데 주로 전날 밤에 마을에서 상영한 영화였습니다.
이교시 수업이 끝나면 일학년 교실과 이학년 교실을 막고있는 벽을 트고 학생들이 집에서 갖고온
이불로 남쪽 창문을 가립니다.
전교생이 한 곳에 모여 바닥에 앉은채로 영화를 보았는데 얼마나 비좁고 덥던지, 또 누군가가
내뿜은 풍시마로 인하여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또 한 손으로는 땀을 훔쳤습니다.
오인의 해병, 철조망, 성웅 이순신, 율곡과 그 어머니, 해병특공대..등 학교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소풍이나 운동회 때와 버금가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따금 울산에서 찝차를 이용하여 마을까지 영화 선전를 하러 올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에 두어 번 부산으로 오가는 버스 가운데 막차 한 대는 한성상회에서 하루를 묵고 (도마레)
다음 날 출발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버스를 대절하였습니다.
저녁에 마을 선배님들이 버스의 한 팀인 운전사, 조수, 차장과 함께 멀리(?) 울산 태화극장까지
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러가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린다이'라는 홍콩 여배우가 주연배우인 신영균을 실제로 사모한 나머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던 영화 "달기", 그리고 김상국의 노래로 유명한 영화
'불나비' 등이 선배님들이 버스 대절하여 울산까지 가서 관람한 '원정영화'였습니다.


전쟁영화를 보고나면 우리는 언제나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이야기하며 골기장이 있는 남산에서
영화에서 본 그대로 실습을 하였습니다.
김대성 선배(22회)가 우리들의 대장이었고 우리들은 대장님의 명령에 따라 나무로 만든 총을
들고 논밭을 가로지르며 '공격앞으로'와 '돌격앞으로'를 반복하곤 하였습니다.


예전의 우리 부모님네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슬픈 영화를 좋아하셨던지요.
아마도 당신들의 고단한 삶을 영화를 통해서나마 위안받고 싶어하셨던게 아니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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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흘러도》

일본의 어느 광산촌에서 아버지마저 잃고 어린 4남매는 뿔뿔이 헤어지는데 일기를 쓰는 일로
동생들이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던 언니의 이야기가 우연한 기회에 책으로 출판되어 전국민
들에게 감동을 주게되고 마침내 4남매가 다시 모여 살게 된다는 재일동포의 눈물어린 순정
실화 영화..






《피리불던 모녀고개》

행복한 가정주부였던 이민자는 뜻하지 않은 실수로 사랑하는 남편, 딸 자식과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어서 딸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어머니는 딸을 그리워
합니다. 두 모녀 사이에는 기구한 비운이 숱하게 가로 놓이지만 마침내 모녀는 눈물과 기쁨의
재회를 합니다.






《에밀레종》






《저하늘에도 슬픔이》

국민학교에 다니는 이윤복은 가난한 가정에서 살아갑니다. 노름을 즐겨하는 아버지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리지만 윤복이는 어린 동생들을 위로하며 구두닦이로 연명
하면서 그날그날의 일을 일기로 적어나갔습니다. 마침내 그의 일기가 담임 선생님(신영균)의
호의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어 그 책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가고 또한 각계로부터 온정이
답지합니다. 이제 아버지도 새사람이 되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도 돌아와 잘 살게된다는 실화.

한동안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든 영화였지요.
동요 '따오기'가 영화 속에 몇번 나왔는데 무척 애처럽게 들렸습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






《외나무다리》

사랑하는 여자 김지미를 동네 건달 허장강이 겁간하여 사랑이 깨지고, 그 일로 실성을
한 최무룡을 그의 어머니 황정순이 등에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동네 김말용 선배(21회)가 노래와 함께 얼마나 실감나게 이야기
해주던지 본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육체의 길》

화목한 가정의 가장인 김승호는 깡패인 허장강의 앞잡이가 되어 나쁜짓을 일삼는 김지미를
동정한 나머지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유랑서커스단의 일원으로 전전하다가
마침내 여자는 죽고 자신도 폐인이 되어 버립니다. 훗날 화목하던 옛집을 찾아가지만 차마
가족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다시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이발소에 붙어있던 이 포스터를 처음 봤을때 '육체'라는 단어에 묘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